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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미래를 엿보는 눈, 사라진 그림자를 쫓다 54화

소설공방 2025. 11. 28. 14:21

 

장소: 지하 수로, 갈림길 (배수 펌프 뒤)

신형사는 숨을 죽였다. 낡은 배수 펌프 장치 뒤, 벽과 펌프 사이에 몸을 웅크린 채였다. 지수에게 기대어 서 있는 은율의 뒷모습이 불과 2미터 거리에 있었다. 은율은 지수를 벽에 기대게 한 채, 갈림길 중앙에 놓인 낡은 배수 펌프의 제어반을 쳐다보고 있었다.

'배수 펌프. 제3의 경로라고 했지.' 신형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은율이 고유성 박사와 함께 있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은율이 지금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것이 LYNX의 목표, 즉 데이터 칩일 터였다.

신형사가 숨을 쉬는 아주 미세한 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은율의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예지 능력을 사용한 후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이었다.

은율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누구세요. 나오세요. 저를 돕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놈들의 사람인가요."

신형사는 쇠파이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모습이 펌프 뒤에서 드러났다.

"나야. 신형사다."

은율의 눈이 크게 뜨였다. 경계심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며칠 밤낮을 쫓겨 다니던 자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당신이 왜...?"

"미끼 노릇은 지겹거든. 고유성 박사가 왜 죽었는지, 네가 뭘 가지고 도망쳤는지 대충 알게 됐어." 신형사는 갈림길 오른쪽 수로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전자음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오른쪽 함정이야. 왼쪽은? 네가 지금 보려고 했던 건 폭발물이겠지."

은율은 경악했다. 자신의 예지 속에서 본 두 가지 함정을 이 남자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경험상. 놈들은 단순하지 않아." 신형사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거야. 네가 지금 뭘 하려 했지?"

"제3의 경로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 배수 펌프가 이 수로의 다른 지점으로 물을 빼낼 수 있다면..."

끼이이이익-!

그 순간, 환풍구 통로 쪽에서 쇠 긁는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이윽고, 은율이 들어왔던 입구에 강렬한 빛줄기가 터졌다. 그림자 2였다. 그는 전술 랜턴을 켜고, 좁은 통로를 벗어나 지하 수로에 발을 내디뎠다. 그의 방탄복과 검은 복면이 빛을 흡수하며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대상 2, 서은율. 데이터 칩 회수 명령. 저항 시 현장에서 폐기한다." 그림자 2의 목소리는 기계적으로 차가웠다.

신형사는 지체 없이 은율을 펌프 뒤로 밀쳐 넣고 쇠파이프를 움켜쥐었다.

"내가 시간을 벌겠다. 네 계획을 실행해. 빨리!"

그림자 2는 두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총을 겨누었다.

"추가 방해 요소. 즉각 제거."

탕!

총성이 울렸다. 그림자 2는 섬광탄처럼 빠른 속도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신형사가 몸을 숙이는 순간,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 펌프 뒤쪽 벽에 박혔다. 시멘트 파편이 튀었다.

신형사는 본능적으로 펌프의 두꺼운 철제 구조물 뒤로 몸을 숨겼다. 그는 쇠파이프를 들고 숨을 헐떡였다. 몇 년 만에 느껴보는 생명의 위협이었다.

"젠장. 화력 차이가 너무 커!"

은율은 옆에서 지수를 끌어안은 채, 펌프 제어반의 낡은 다이얼과 스위치를 필사적으로 살폈다. 그의 손은 이미 예지를 통해 이 장치의 작동 순서를 알고 있었다.

파편: 메인 밸브. 빨간색 경고등. 그리고 펌프 작동 스위치. 오래된 배수관이 터져 오수가 쏟아지는 장면.

은율은 진통제 복용으로 인한 떨림을 억누르며, 제어반의 가장 오래된 다이얼을 돌렸다. 끼릭- 끼릭- 녹슨 다이얼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뭘 하는 거야! 놈이 가까워진다!" 신형사가 소리쳤다.

그림자 2는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전술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좁고 물이 차 있는 수로에서는 총보다 근접 전투가 효과적임을 알고 있었다.

"서은율! 칩을 내놓으면 고통 없이 끝내주겠다." 그림자 2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펌프를 향해 달려들었다.

신형사는 그림자가 펌프 장치에 접근하는 순간, 숨어 있던 곳에서 튀어나왔다. 쇠파이프가 그림자 2의 측면을 강타했다.

크앙!

강철과 방탄복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지하에 울렸다. 그림자 2는 충격으로 잠시 휘청거렸지만, 즉시 균형을 되찾았다. 그의 움직임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잘 훈련된 짐승 같았다.

그림자 2는 분노한 듯, 신형사를 향해 나이프를 휘둘렀다. 신형사는 간신히 피했지만, 날카로운 나이프가 그의 팔뚝을 스쳐 지나갔다. 검은색 방한 점퍼가 찢어지고 핏물이 스며 나왔다.

바로 그때, 은율이 마지막 스위치를 내렸다.

덜커덩-! 굉음!

오랜 시간 동안 잠겨있던 배수 펌프가 미친 듯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펌프 작동과 동시에, 갈림길의 중앙 바닥에 설치된 낡은 맨홀 뚜껑 하나가 엄청난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뻥!'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 맨홀 뚜껑 아래는 은율이 예지에서 본 제3의 경로, 즉 폐쇄 수로의 메인 배수구로 연결된 지점이었다.

쉬이이이익-! 콰아앙!

메인 배수구에서 엄청난 양의 묵은 오수가 터져 나오며, 갈림길 지점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 물은 수로 전체를 뒤덮으며 거대한 급류를 형성했다.

"지금이다! 신형사!"

은율은 지수를 등에 꽉 묶고, 터져 나오는 물살 속으로 몸을 던졌다. 강력한 물살이 그들을 아래로, 새로운 배수구 통로로 휩쓸고 내려갔다.

그림자 2는 갑작스러운 물줄기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신형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쇠파이프로 그림자 2의 머리를 향해 맹렬하게 휘둘렀다. 방탄모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졌다.

크랙!

그림자 2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날카로운 숨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쓰러졌다.

신형사는 쓰러진 그림자 2를 잠시 노려본 후, 은율과 지수가 휩쓸려 내려간 배수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물살은 너무 강해서, 맨몸으로 뛰어들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후우..." 신형사는 찢어진 팔뚝을 부여잡고, 배수구 입구 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낡은 쇠사슬을 발견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뒤에서는 곧 그림자 1이 합류할 터였다. 하지만 은율이 가진 데이터 칩과 진실이 더 중요했다.

신형사는 쇠사슬을 붙잡고, 은율과 지수가 사라진 어둠 속의 수직 배수구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은 차가웠고, 속도는 엄청났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는 중얼거렸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이제 그는 LYNX의 예측 밖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쫓는 사냥개가 되었다.

장소: 지하 수로, 상부 맨홀

신형사는 폐기된 주차장의 맨홀 뚜껑을 들어 올렸다. 눅눅한 냄새와 함께 하수구 특유의 악취가 훅 끼쳐 올라왔다. 그는 방독면 대신, 목에 두르고 있던 낡은 스카프를 코와 입에 둘러맸다.

그는 맨홀 사다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경찰 재직 시절, 그는 도시의 지하 수로와 배수 시스템에 대한 지식을 꼼꼼하게 외웠었다. 범죄자들이 도주로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지식이 자신의 발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박강호 (메시지)]: "형님, 고유성 박사는 중구 구옥 5동 지하에 있었어. 그쪽 하수구는 10년 전에 폐쇄되어 지금은 지름길로 쓰이곤 해. 거기서 북쪽 수로를 타면…."

신형사는 박강호가 보낸 지도를 단말기로 확인했다. 구옥 5동 서버실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폐쇄 수로는 300미터 앞에서 시청 방향의 주요 하수구와 연결된다.

'은율은 분명 동쪽으로 가고 있을 거야. 가장 빠른 탈출로니까.'

신형사는 속도를 올렸다. 그는 은율이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갈림길 지점까지 2분 안에 도착해야 했다. 그는 벽에 기대어 있던 낡은 쇠파이프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맨몸의 형사에게 그것은 유일한 무기였다.

그의 눈앞에 희미한 갈림길 지점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오른쪽 수로에서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푸른 불꽃이 튀는 것을 목격했다.

'이미 놈들이 도착했어! 함정이다!'

신형사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몸을 숙여 갈림길 중앙의 배수 펌프 뒤로 은밀히 숨어들었다. 그는 은율이 아직 거기에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